4장.반감시와 통신비밀의 보호
3. 위치추적
대개의 위치정보는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사실확인자료로서 규율되고 있다. 2001년 통신비밀보호법에 신설된 통신사실확인자료는 전기통신사실에 관한 자료(제2조 제11호)인데, ‘정보통신망에 접속된 정보통신기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발신기지국의 위치추적자료’(바목), ‘컴퓨터통신 또는 인터넷의 사용자가 정보통신망에 접속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정보통신기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접속지의 추적자료’(사목)를 포함한다.
이동통신 기지국과 인터넷 접속 IP주소는 이처럼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규율되어 왔는데 최근에는 모바일 환경의 확산에 따라 그보다 더욱 정확한 위치정보가 널리 수집되고 사용되고 있다.
한국은 2005년에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률에서 말하는 ‘위치정보’란, GPS칩이 내장된 단말기를 통해 수집되는 GPS 정보, Wi-Fi칩이 내장된 전용단말기 등을 통해 수집되는 WPS 정보 또는 기타 위치를 식별할 수 있는 장치를 통해 수집되는 정보를 의미한다.
누구나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휴대하고 다니는 모바일 환경 속에서 위치정보는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라 할 수 있다. 정보·수사기관에 대한 제공 뿐 아니라 기업이 위치정보를 이용하여 노동자를 감시하거나 소비자를 추적하는 데 대한 엄격한 사회적 통제가 시급하다.
3-1. 기지국 위치추적
이동통신의 기지국 위치정보는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사실확인자료에 속한다. 2001년 관련 규정이 통신비밀보호법에 신설될 당시 통신사실확인자료들은 누군가가 과거에 통신한 사실에 관한 자료, 즉 통신 내역을 의미했다. 그러나 현재 기지국 위치정보는 대상자를 특정하지 않고 대량으로 제공되거나(기지국수사), 대상자의 장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데(실시간 위치추적)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정보·수사기관이 통신사업자로부터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받으려면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 하지만 그 허가요건은 ‘수사의 필요성’ 뿐이다. 수사기관의 일반 압수수색영장이 ‘수사의 필요성’, ‘피의자 혐의의 개연성’, ‘피압수물과 사건관련성’을 요건으로 하는 것과 비교하여 볼 때 수사기관의 남용에 대한 법원의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정부는 2010년 4월 2일 보도자료에서 “특정 시간대 특정 기지국에서 발신된 모든 전화번호를 대상으로” 통신사실을 확인하는 일명 ‘기지국수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당시 정부는 문서 한 개의 기지국 수사에서 통상 1만개 내외의 전화번호 수가 제공된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은 집회 참가자의 신원을 특정하기 위하여 집회 장소 주변의 이동통신 기지국에서 신호가 잡히는 모든 휴대전화의 내역을 제공받고 있다. 2011년 검찰은 야당인 민주통합당 집회의 금품수수 사건을 수사한다며 주변 기지국으로부터 659명의 휴대전화번호를 제공받았다. 취재차 이 집회에 참여하였다가 위치정보를 제공당한 인터넷언론 참세상 김OO 기자는 2012년 6월 이 사건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단지 기지국에서 신호가 잡혔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의 휴대전화번호를 대량으로 제공하는 기지국 수사는 개인의 위치정보에 대한 권리 침해이다. 특히 집회 참가자에 대하여 기지국 수사를 실시하는 것은 집회시위의 권리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2015년 11월 5일 한국 수사기관이 집회 참가자들을 특정하기 위한 ‘기지국 수사’를 실시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우려를 표하며 기지국 수사가 자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보호수단을 강화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하였다.
2011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씨를 응원하기 위하여 전국적으로 ‘희망버스’가 모여들자 경찰은 이 활동을 기획한 활동가들을 체포하기 위해 활동가들과 그 가족의 휴대전화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였다. 2013년 경찰은 파업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휴대전화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였다. 추적 대상에는 아직 초등학생인 노동자의 자녀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노동자와 그 가족이 이용하는 은행, 쇼핑, 언론, 게임 사이트의 인터넷 아이디에 대한 접속 IP주소도 실시간으로 제공되었다. 각각의 사건은 당사자들과 인권단체들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여 현재 심사 중이다.
실시간으로 위치를 제공받는다는 것은 청구시점에서 아직 어떠한 통화나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자료를 제공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시간 기지국 위치추적의 경우 휴대전화의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10분 단위로 제공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는 ‘사실확인자료’라고 보기도 어렵다. 감청이나 다름 없는 장래의 위치정보 제공은 현재보다 엄격한 법원의 심사가 필요하다.
2014년 2월 1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실시간 위치추적 관련한 제도 개선을 권고하였다. 통신비밀보호법에 실시간 위치정보 관련 규정을 신설하고, 수사기관이 이 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때에는 그 요건을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과 더불어 보충성의 요건을 갖추도록 권고하였다.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불수용하였다.
3-2. GPS 위치추적
모바일 환경의 확산에 따라 최근에는 이동통신 기지국보다 더욱 정확한 GPS 위치정보가 널리 수집되어 사용되고 있다. 기지국의 반경에 따라 150m~수km의 오차를 가지는 이동통신 기지국 위치정보와 달리 인공위성을 활용하는 GPS의 경우 그 오차가 5~150m 정도로 매우 정확한 위치를 드러낸다. 실외에서만 위치가 파악되는 GPS를 보완하여 오차범위가 10m 이내로 더욱 정확한 Wi-Fi 접속지점(AP)의 위치정보가 함께 활용되기도 한다.
2005년 제정된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GPS 및 Wi-Fi 와 같은 위치정보는 개인위치 정보주체의 동의가 있어야만 수집 및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소방방재청(119), 경찰관서(112) 등 긴급구조기관은 급박한 위험으로부터 생명·신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개인위치정보주체 및 그 배우자 등의 긴급구조요청이 있는 경우 위치정보사업자에게 개인위치정보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기존에 소방방재청이 긴급구조 목적으로 제공받아 필요시 경찰 등과 공유해온 GPS 위치정보를 2012년부터 수사기관인 경찰이 법원의 허가 없이 직접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논란거리이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전병헌 의원은 위치정보 확인기관으로 경찰이 추가된 이후 위치정보 제공이 40% 증가해 2013년 기준 연 1천만 건을 넘어섰다면서, 경찰이 이용하는 위치정보가 긴급구조 활동만을 위한 것인지, 사찰 등 다른 목적으로 오남용되지 않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2012년 10월부터 국내에서 생산된 모든 스마트폰 단말기에는 이용자의 GPS와 Wi-Fi를 이동통신사가 원격으로 강제 활성화할 수 있는 기능이 내장되었다는 사실이 2014년 뒤늦게 공개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