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인터넷 표현의 자유
1.개요
한국사회에서 컴퓨터 통신의 확산은 민주화 시기와 맞물린다. 87년 민주화 무렵 PC통신이 보급되었고 문민정부 출범 이후 1994년에 인터넷 상용화의 시대가 열렸다. 대중들의 표현 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오랫동안 미디어를 검열해 왔던 제도와 기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1996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영화 검열과 음반 검열에 대하여 차례로 위헌 결정을 내렸고 검열기구 공연윤리위원회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국 시민들은 PC통신과 인터넷의 등장 초기부터 열렬히 사이버 공론장을 형성하고 참여하였으며 검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미디어를 꿈꾸었다.
검열 당국은 PC통신이 확산되자 곧바로 내용규제를 위한 제도와 기구를 정비하였다. 가장 빠르게 적용된 법률은 구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불온통신의 단속’ 조항이었다. 이 조항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제정된 이래로 “전기통신을 이용하는 자는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통신을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2002년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가 “인터넷은 공중파 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라고 선언했다는 사실은 큰 울림을 주었다. ‘불온통신의 단속’ 위헌 결정은 헌법재판소 설립 25주년을 맞아 선정된 “주요 결정 10선”에도 꼽힌 역사적인 판결로 남았다.
인터넷은 공중파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이다. 공중파방송은 전파자원의 희소성, 방송의 침투성, 정보수용자측의 통제능력의 결여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공적 책임과 공익성이 강조되어, 인쇄매체에서는 볼 수 없는 강한 규제조치가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위와 같은 방송의 특성이 없으며, 오히려 진입장벽이 낮고,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장되며, 그 이용에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 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표현매체에 관한 기술의 발달은 표현의 자유의 장을 넓히고 질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으므로 계속 변화하는 이 분야에서 규제의 수단 또한 헌법의 틀 내에서 다채롭고 새롭게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2. 6. 27. 99헌마480
그러나 군사독재정권까지 그 유래가 거슬러 올라가는 국가의 통신 내용 규제는 전체 인구의 84%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현재까지도 그 주요 골자를 유지하고 있다. 기존 미디어에서는 주로 전업적인 정치인, 언론인이나 예술가가 규제의 대상이었다. 인터넷의 내용 규제는 주로 일반 시민들의 표현물을 대상으로 한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가혹한 형사처벌은 줄었으나 없어지지는 않았고 국가가 심의하여 삭제 등 조치하는 대상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넓다.
규제기구로서는 강력한 행정심의기관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 사이버 공간을 규율하는 최초의 행정심의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법정화하였다(전기통신사업법). 이 기구를 둘러싼 논란은 ‘인터넷 등급제’ 논란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2000년 정보통신부는 국내 인터넷 콘텐츠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부여한 등급을 의무화하겠다는 내용의 ‘통신질서확립법’을 입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영리 목적의 청소년유해매체물에만 적용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청소년, 성소수자를 포함한 많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강력한 반발로 입법안의 대부분이 무산되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치적 심의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트위터 계정에 대한 접속을 차단하는 등 자의적인 심의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기밀 누설, 국가보안법 위반, 기타 범죄교사·방조 행위의 경우 인터넷 게시판 운영자나 사업자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요구를 거부할 경우 방송통신위원장으로부터 그 취급을 거부·정지 또는 제한하라는 행정명령을 받게 되고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엔 인권이사회는 행정심의를 민간자율심의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정부는 아직까지 이 권고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행정심의기관의 규제대상은 불법정보, 청소년유해정보와 더불어 ‘건전한 통신윤리’로 나뉜다(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행정심의기관의 게시물 삭제 등 조치와 별개로 이용자들이 현행법상 불법인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다. 일반 이용자들이 게시물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죄목은 음란, 명예훼손, 국가보안법 등이고 선거시기에는 공직선거법에 따른 형사처벌이 많다. 명예훼손이나 저작권 위반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인터넷 사업자가 신고를 받고 조치하는 고지 후 삭제 혹은 임시조치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나 표현의 자유 침해와 관련한 논란이 일어나곤 한다.
한국의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규제방법이 실명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인확인제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실명이 확인된 이용자에 한해 인터넷 글쓰기나 게임 이용을 허용하는 제도이다. 실명 확인은 주민등록번호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국가가 게시자의 신원을 매우 손쉽게 추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민간 인터넷 서비스의 주민등록번호 오남용의 원인이 된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에는 인터넷 본인확인제에 대하여, 2015년에는 주민등록번호 변경불허에 대하여 각각 위헌과 헌법불합치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인터넷에서는 게임 등 영역별로, 선거시기 등 시기별로 본인확인제가 유지되고 있다. 익명 표현의 자유 실현이 아직 요원한 것이다.
이 사건 법령조항들은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의 해외 사이트로의 도피,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 사이의 차별 내지 자의적 법집행의 시비로 인한 집행 곤란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고, 나아가 본인확인제 시행 이후에 명예훼손, 모욕, 비방의 정보의 게시가 표현의 자유의 사전 제한을 정당화할 정도로 의미 있게 감소하였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는 반면에, 게시판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사전에 제한하여 의사표현 자체를 위축시킴으로써 자유로운 여론의 형성을 방해하고, 본인확인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정보통신망상의 새로운 의사소통수단과 경쟁하여야 하는 게시판 운영자에게 업무상 불리한 제한을 가하며, 게시판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부당하게 이용될 가능성이 증가하게 되었는바, 이러한 인터넷게시판 이용자 및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불이익은 본인확인제가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결코 더 작다고 할 수 없으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2012. 8. 23. 2010헌마47·252(병합).
최근에는 국가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16년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은 인터넷 표현의 자유가 민간기업으로 인해 제약되는 것을 우려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할 기본적인 책임을 진다. 정보통신기술과 관련해서 이는 정부가 민간기업에 대하여 법률, 정책, 법외적 수단 등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필수적이거나 비례적이지 않은 간섭을 행하는 조치를 요구하거나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디지털 통신내용을 삭제하거나 이용자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요구, 요청, 조치 들은 정당한 제정 법률에 기반해야 하며, 독립적인 외부기관의 감독을 받아야 하고, 자유권규약 19조 3항에 명시된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으로서 필수성과 비례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민간기업 규제와 관련해서 정부의 법률과 정책들은 투명하게 채택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2016년 6월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 (A/HRC/3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