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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은 적법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1항에서 규정한 여섯 가지 중의 하나에 해당해야 한다.
제15조(개인정보의 수집·이용) ① 개인정보처리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며 그 수집 목적의 범위에서 이용할 수 있다.
1.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은 경우
2.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거나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
3. 공공기관이 법령 등에서 정하는 소관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
4. 정보주체와의 계약의 체결 및 이행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필요한 경우
5. 정보주체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있거나 주소불명 등으로 사전 동의를 받을 수 없는 경우로서 명백히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급박한 생명, 신체, 재산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6.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 이 경우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과 상당한 관련이 있고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한한다.
우선 사업장 내에서 노동자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법적 근거로는 제2호와 제4호를 들 수 있다. 근로계약의 체결 및 이행을 위하여, 사용자는 제4호에 따라 노동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이름, 연락처, 계좌번호 등 업무상 소통이나 급여 지급에 필요한 정보들이 이에 해당한다.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근로계약 체결 및 이행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제2호는 법령에서 개인정보 수집을 규정하고 있는 경우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자 명부, 임금대장 등을 작성하기 위해 근로자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노동감시와 관련하여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제1호와 제6호이다. 사용자는 감시설비를 도입할 때 노동자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데, 이때 다음 네 가지 사항을 정보주체(노동자)에게 알려야 한다.
1. 개인정보의 수집·이용 목적
2. 수집하려는 개인정보의 항목
3. 개인정보의 보유 및 이용 기간
4. 동의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 및 동의 거부에 따른 불이익이 있는 경우에는 그 불이익의 내용
이때 동의의 진정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업장 내에서 노동자는 사용자에 비해 취약한 지위에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사용자가 동의를 요구할 때 노동자가 이를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해고되거나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의는 정보주체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것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진정한 동의여야 한다. 동의가 형식적인 절차에 그친다면 오히려 정보주체의 개인정보를 남용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진정한 동의가 되기 위해서는 정보주체가 동의하는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아무런 외부적인 압력 없이 자유롭게 동의의 의사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업장 내에서, 더구나 노동자를 감시할 수 있는 설비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노동자가 한 동의가 진정한 동의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동자의 동의가 자유롭게 주어졌다는 것에 대한 입증 책임은 결국 개인정보처리자인 사용자에게 있다. 노동자들은 설사 형식적인 동의를 했더라도 부당한 감시설비 도입과 개인정보 수집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동의의 진정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물론 사업장 내에서 동의의 진정성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설비의 도입이나 사원 복지를 위한 가족 개인정보의 수집과 같이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 또는 거부해도 별다른 불이익을 당할 염려가 없는 경우에는 동의의 진정성이 인정될 수 있다. 이는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 다르며, 결국 사용자가 동의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고지와 동의 없이 감시설비를 도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사용자는 제15조 제1항 제6호, 즉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를 근거로 들 수 있다. 시설 보호나 영업비밀 보호 등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을 위해 감시설비를 도입하고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을 명분으로 모든 형태의 개인정보 수집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6호에 규정되어 있는 바와 같이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이 노동자(정보주체)의 권리보다 “명백하게 우선”하는 경우여야 하며, 이를 위해 감시설비를 통한 개인정보 수집이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과 상당한 관련이 있고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시설 보호를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한다면, CCTV의 촬영 범위는 보호하고자 하는 시설에 한정되어야 하며, 불필요하게 노동자의 활동까지 모니터링할 수 있다면 이는 합리적인 범위라고 보기 힘들다.
물론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이 정보주체로서 노동자의 권리보다 우선하는지 아닌지, 수집되는 개인정보가 합리적인 범위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고용노동부)는 감시설비의 도입과 노동자 개인정보 수집의 맥락에서 제15조 제1항 제6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근로기준법 등 법 개정을 통해 감시설비 도입시 업무 관련성과 비례성의 원칙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가 정당한 이익 조항에 근거하여 감시설비를 동의 없이 도입했을 경우, 노동자 혹은 노동조합은 이것이 노동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지, 합리적인 범위에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지 문제제기할 필요가 있다. 설사 감시설비가 도입되더라도 그 활용 범위와 조건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업 현장에 CCTV를 도입할 것인가 여부도 중요하지만, 설사 CCTV를 도입하더라도 촬영의 범위는 어떻게 할 것인지, 카메라의 성능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지, 영상은 얼마나 오래 보관할지, 촬영된 영상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할지 등에 따라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 4장에서 노동감시의 유형별로 노동자 권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려 사항을 자세히 설명한다.
사업장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유럽연합의 해석
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법인 GDPR은 ‘동의’consent에 대한 정의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동의는 (…) 정보주체가 개인정보의 처리에 대해 자유롭게 제공하여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고지된 명확한 합의를 나타내주는 적극적인 행위any freely given, specific, informed and unambiguous indication of the data subject’s wishes로써 제공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의 개인정보 감독기구 대표로 구성되고 개인정보 보호규정 해석의 지침을 제공하는 WP29는 2017년 발간한 의견서4에서 노사관계의 성격을 고려할 때 사업장 내에서 대부분의 개인정보 처리는 근로자의 동의를 적법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동의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WP29, 「사업장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의견서」(Opinion 2/2017 on data processing at work), 2017.6.8., WP249] 또한 사용자가 정당한 이익legitimate interest을 적법 근거로 삼을 경우 개인정보 처리가 처리 목적에 비례적이어야 하고, 가장 덜 침해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특정한 위험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과 근로자의 기본권과 자유 사이의 균형을 위해서는 ‘완화 조치’mitigating measures가 반드시 취해질 필요가 있는데, 이는 (감시의 형태에 따라) 근로자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지 않을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제한하는 것을 포함한다.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이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어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유럽연합보다 정보주체의 권리를 강하게 보호하고 있다.
개인정보 수집이 동의, 법령, 계약,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 등 어떠한 근거에 따른 것이든 상관없이 그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을 수집해야 한다. 이 경우 최소한의 개인정보 수집이라는 입증책임은 개인정보처리자(즉 사용자)가 부담한다(개인정보보호법 제16조 제1항).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자의 취약한 지위를 고려할 때, 개별 노동자의 동의는 진정한 동의가 되기 힘들다. 사용자가 정당한 이익을 근거로 감시설비를 도입할 경우에도, 노동자의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도입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전적으로 사용자의 결정에만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감시설비의 도입이나 개인정보 처리와 관련하여 사업장 내에서는 노동조합 혹은 노동자 대표와 협의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 참여법에서 노사협의회의 협의 사항 중 하나로 “사업장 내 근로자 감시설비의 설치”를 두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만, 벌칙 조항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일 뿐 아니라 세부적인 규정도 두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감시설비 도입시 노동조합(혹은 노동자 대표)과의 협의를 의무화하고 고용노동부가 이에 대해 감독할 수 있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