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인터넷 표현의 자유

2. 행정심의

한국 인터넷 내용규제는 주로 강력한 행정심의기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1995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법정화하였다(전기통신사업법). 당시는 군사독재정권 시절부터 영화·음반 등을 검열해온 검열기구(공연윤리위원회)가 아직도 활동하고 있었던 때였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행정심의기관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한 검열이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2015년 3월 24일 인도 대법원은 인터넷 게시물을 법원명령없이 삭제하는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한국 인터넷의 경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같은 행정심의기관이 현재까지 인터넷의 내용심의를 담당하고 있다. 2008년에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방송위원회가 통합하여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출범하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치적 심의 논란이 커지면서 국내외 인권기구로부터 인터넷 행정심의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2-1.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최초의 사이버공간 행정심의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출범 직후인 1995년 10월, 불건전정보 6백 6개를 선정해 국내 인터넷서비스에서 이에 대한 접속을 차단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인터넷 불건전정보방지대책’을 발표했다. 활동 근거는 당시 구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 규정되어 있었던 ‘불온통신의 단속’ 조항이었다. 1999년 6월에는 서해교전 사건에 대하여 항공대 학생운동단체가 게시한 대통령 비판 게시물이 이 조항에 의해 삭제되었다.

2002년 이 사건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불온통신의 개념이 위헌이라고 선언하였다. 헌법재판소는 “규제의 법적 구조가 정보통신부장관-전기통신사업자-전기통신이용자의 삼각구도로 짜여져 있어, 명령 및 처벌의 대상자는 전기통신사업자이지만, 그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는 자는 이용자가 된다”고 지적하며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이라는 불온통신의 개념이 모호하여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규제되지 않아야 할 표현까지 다함께 국가가 규제하는 것이 과잉이라는 것이었다.

2008년에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방송위원회가 통합하여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출범하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하여 조치하는 대상은 크게 보아 ‘불법정보’, ‘청소년유해정보’, 그 밖의 ‘건전한 통신윤리’로 나뉜다. 조치의 종류는 해당 정보의 삭제 또는 접속차단, 이용자에 대한 이용정지 또는 이용해지, 청소년유해정보의 표시의무 이행 또는 표시방법 변경 등과 그 밖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등이다(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및 동법 시행령). 특히 국가기밀 누설, 국가보안법 위반, 기타 범죄교사·방조 행위의 경우 인터넷 게시판 운영자나 사업자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요구를 거부할 경우 방송통신위원장으로부터 그 취급을 거부·정지 또는 제한하라는 행정명령을 받게 되고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불법유해정보 차단 사이트 이미지 캡처
불법유해정보 차단 사이트 이미지 캡처(출처 : http://warning.or.kr)

2008년 출범 직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광우병촛불집회에 대한 왜곡 보도를 비판하며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주 불매 운동을 제안한 인터넷 카페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의 게시물 수십 건을 대대적으로 삭제하고, 유사한 내용의 게시물도 계속적으로 삭제할 것을 포털 사이트에 요구하였다. 2011년에는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트위터 @2MB18nomA 이용자의 개인 페이지(http://twitter.com/2mb18noma)에 대한 국내 접속을 차단하였다(현행 법률상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2009년에는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의 다음블로그 시멘트 관련 게시물이 한국양회공업협회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삭제하였다. 2012년 법원은  “방통심의위의 행정처분은 한국양회공업협회 의 일방적 요청에 의한 공정하지 않은 심사 결과로, 국민의 표현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판결하였다(서울행정법원 2010.2.11. 선고 2009구합35924).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자신들이 민간인으로 구성된 독립기구로서 행정청이 아니고, 자신들의 시정요구는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단순한 권고이므로 행정처분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법원은 이 기관이 행정기관이고 그 처분은 행정처분이라 인정하였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심의를 독립적인 민간자율기구에 이양할 것을 권고하였으며 2011년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도 한국보고서에서 마찬가지 내용을 권고하였다. 특별보고관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부나 유력한 기업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정보를 위법이라는 이유로 삭제하는 사실상의 사후 검열기구로 기능하지 않도록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미흡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인권위 10.9.30. 정보통신심의제도에 대한 개선권고).

반면 헌법재판소는 2012년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과 최병성 목사의 헌법소송에 대하여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2012. 2. 23. 2008헌마500 등). 심의위원회로 하여금 불건전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적절하고 인터넷 정보의 복제성, 확장성, 신속성을 고려할 때 시정요구 제도를 통해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이라는 공익을 보호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는 이유 등이었다. 유사한 이유로 2MB18nomA 트위터 이용자도 행정소송에서 패소하였다. 인터넷 행정심의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2-2. 인터넷내용등급제

2000년 7월 20일 정보통신부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건전한 정보통신윤리 확립을 위해 사업자와 이용자의 새로운 의무들을 규정하고 법률 명칭도 <개인정보보호 및 건전한 정보통신질서 확립 등에 관한 법률>(통신질서확립법)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약칭 ‘통신질서확립법안’은 내용규제 면에서 사업자 뿐 아니라 이용자에 대해서도 여러 의무와 처벌 규정을 신설하였다. 불법정보의 제작과 유통을 금지하고 그 신고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 받아 정보통신부 장관이 해당 정보의 취급을 거부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규정을 두었다. 망사업자를 비롯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는 불법정보 모니터링과 처리 책임을 크게 늘렸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불량’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을 제공받아 ‘불량이용자 DB’를 관리하고 이들이 정보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담겨 있었다.

인터넷등급제 거부운동 로고
인터넷등급제 거부운동

2000년대 전후로 활발해진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 활동으로 자유로운 인터넷을 만끽하던 이용자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시민단체들은 특히 ‘인터넷 등급제’의 문제점에 주목하였다. 인터넷 등급제는 영리 목적으로 청소년에게 유해한 인터넷 컨텐츠를 제공하는 경우 내용등급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학교 도서관 등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기관이나 시설에서는 특정 등급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소프트웨어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였다. 어떤 등급을 부여할 것인지는 행정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판단한다. 정보통신사업자 등이 자율적으로 부여한 등급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조정하도록 했으며 사업자는 그 조정 결과에 따를 의무가 있었다.

인터넷 등급제 논란은 국가주도의 인터넷 통제에 대해 인터넷 자율 문화가 본격적으로 반격한 사건이었다. 정부의 인터넷 등급제는 PICS라는 기술표준을 이용한 것이었다. 인터넷 HTML 문서 내부에 메타태그를 이용하여 등급표시를 하면 필터링 소프트웨어가 그 등급을 기술적으로 인식해 자동으로 차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인터넷 필터링이 민간에 의해 자율적으로 실시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설치된 행정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의무적으로 실시한다고 하였다. 특히 인터넷방송과 게임에 대해서는 사전 등급제가 실시된다고 하자, 이용자들은 이미 영화와 음반 검열 사건에서 위헌으로 결정된 행정기관의 사전심의제가 인터넷에서 부활하는 것이 웬말이냐며 반발하였다.

시민사회단체와 네티즌이 정부에서 추진 중인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의 개정안 – ‘통신질서확립법’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온라인 매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법·행정조직·규제는 곧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이해 관계가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통신질서확립법의 첫 번째 문제는 현행 법률과 별도로 온라인 매체 규제법을 따로 두겠다는 발상이다. 우리는 이것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며 검열이라고 주장한다. 매체의 내용을 불법으로 ‘간주’하여 처리하는 것이 신속할 수는 있으나 그만큼 심각한 인권 침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모든 이용자를 컴퓨터 범죄 혐의자로 간주하고 인터넷에 국가에 의한 검열을 일상화하고 내면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통신질서확립법의 두 번째 문제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를 도입한다는 발상이다. 인터넷 내용 등급제의 기준을 만들고 판단·감시하고 부과하는 권한을 모두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집중함으로써 명목상 ‘자율’, 실질적으로는 국가에 의한 ‘검열’을 제도화하고 있다. 영화 등급제에서 등급 보류 판정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8월 25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여기서 매우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2000년 9월 2일[검열반대]를 위한 네티즌 집회에 참석한 네티즌 일동

정부가 인터넷 청소년유해매체물 문제에 적극 나서게 된 배경에는 특히 성표현물 증가에 대처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청소년보호위원회와 정보통신부는 1999년 8월, 안방까지 침입한 외국의 포르노 사이트를 막기 위해서 “사이버공간에 국경을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에게 정부가 지정한 외국 포르노 사이트의 국내유통을 차단하는 기술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의무지우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인터넷내용등급제는 이러한 발상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1992년 마광수 교수 소설과 1997년 장정일씨 소설 논란에서 보듯이 민주화 이후 성표현물에 대한 대중적 욕구가 커져가고 있었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이용자 수가 증가하면서 성표현물도 증가하였다. 영화나 TV에서처럼 통제되지 않은 성표현물의 등장이라니, 국가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2001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미술교사였던 김인규 교사의 온라인 누드 전시회를 폐쇄한 사건은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물론 국가가 당황한 것은 성표현물에 대해서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자퇴생 커뮤니티인 ‘아이노스쿨’을 폐쇄한 이유는 이 사이트가 “학교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등급제는 이런 국가의 규제 의지가 기술적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인터넷 등급제 반대 운동은 커졌다. 정보통신부 홈페이지 가상연좌시위를 앞두고 정보통신부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소동이 일기도 하였다(이 사건으로 진보네트워크센터는 경찰로부터 7시간 동안 압수수색을 당했으나 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특히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입되는 인터넷 등급제에 대하여 청소년 이용자들이 크게 반대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십대들이 주요 창작자로 참여하는 팬픽이 검열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인기 아이돌 팬클럽 들에서 반대 여론이 높았다. 청소년들은 이 법안의 제정과 시행에 반대하는 온라인 캠페인과 오프라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정보통신부 게시판은 “팬클럽이 단결하여 질서확립법 끝장내자”,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어른들의 판단에 맡겨야 합니까”라는 내용의 게시물들로 뒤덮였다. 성소수자들 또한 인터넷 등급제에 반대하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폐지를 주장하는 집회를 열었다. 인터넷 등급제의 대상이 될 ‘청소년유해매체물’의 법정 기준에 ‘동성애’를 포괄적으로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제7조 별표1).

정보통신윤리위원회 폐지운동
정보통신윤리위원회 폐지운동

이용자와 시민사회의 반발이 확산되자 정부는 여러 차례 법안 수정을 거쳤고 “정보내용등급표시제”를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로 수정한 법안을 2000년 11월 21일 발의하였다. 이듬해 1월 16일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또 많은 수정이 이루어졌으나 청소년유해매체물과 인터넷 등급제의 주요 골자는 변하지 않았다.

네티즌단체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은 사이트 파업(2001년 6월 29일~7월 2일), 60일 릴레이 철야단식농성(2001년 10월 22일~12월 20일), 거리 문화공연 등을 통해 격렬히 반대활동을 전개하였다(http:// freeonline .or .kr/). 홈페이지 문을 스스로 닫는 사이트 파업은 온라인 액션의 역사 속에서 처음 시도된 것으로, 집계된 곳만 500여 홈페이지들이 파업에 동참하였다.

이 법에 의해 인터넷 등급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된 동성애 사이트 엑스존은 2002년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2004년과 2007년 이 사건을 각각 기각하였다(헌법재판소 2004. 1. 29. 2001헌마894 결정, 대판 2007. 6. 14. 2004두619 판결). 다만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2004년 4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할 때 청소년유해매체물의 기준에서 ‘동성애’를 삭제했다. 성소수자 관련 인터넷 콘텐츠나 커뮤니티에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낙인이 찍히고 국내 인터넷 공간에서 기술적으로 필터링될 위기에 처하자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적극 문제를 제기한 덕분이었다.

2015년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고시에서는 인터넷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해 여전히 PICS 기술표준에 따른 ‘전자적 표시’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행정부 차원에서 인터넷내용등급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 보호를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국가가 일방적으로 청소년유해매체물을 지정하고 그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일반시민의 콘텐츠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터넷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규제 모델이다. 일반 시민의 표현의 자유는 더욱 폭넓게 인정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민간자율규제기구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