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정보인권의 개념

정보인권에 대한 삽화

1. 개요

인권이란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개인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리는 불가침⋅불가양의 기본적 권리를 말한다. 국가는 이러한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헌법으로부터 부여받고 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인권 중에서 정보의 유통에 관한 개인의 기본적 권리들을 묶어서 ‘정보인권’(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and Human Rights)이라고 통칭하고 있다(국가인권위원회 정보인권 보고서).

2013년 1월 <정보인권 보고서>를 발간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보인권이란 정보통신 기술에 의하여 디지털화된 정보가 수집⋅가공⋅유통⋅활용되는 과정과 그 결과로 얻어진 정보가치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고 자유롭고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라고 개념을 정의하였다.

정보인권이 헌법이나 국제 기준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유엔(UN) 등과 같은 국제 기구에서도 ‘정보인권’을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보사회 혹은 디지털 환경에서도 ‘인권’의 가치가 옹호되어야 함을 반복해서 선언하고 있다. 정보 사회와 관련하여 유엔이 주최한 첫 국제 회의라고 할 수 있는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on the Information Society, WSIS)’ 1차 회의 결과물인 <제네바 원칙 선언문>은  ‘정보사회에 대한 우리의 공통 비전’으로 “민중 중심의, 포용적이고 개발 지향적인 정보 사회를 건설할 것”이며,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편성, 분리불가능성, 상호 의존성을 재확인”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uncil)는 2012년 7월, 85개국이 서명한 <인터넷에서 인권의 증진, 보호 및 향유 결의안>에서 “오프라인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인권은 온라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라고 확인하였다.

정보인권 역시 그 기본적인 가치는 표현의 자유나 프라이버시권(사생활의 자유) 등 전통적인 기본권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네트워크의 전 지구적 확대, 이에 따른 정보와 지식의 생산, 유통, 향유 과정의 변화는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정보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의 변화가 부와 권력 지형의 변화를 야기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제반 사회 문제와 인권 침해를 전통적인 인권 개념이 어떻게 포섭할 것인지, 새로운 인권 개념의 형성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인권 개념이 새로운 사회 변화를 수용하며 변화하게 되는 한편, ‘잊힐 권리’와 같은 새로운 권리 개념이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는 가장 오래된 기본권의 하나지만, 인터넷은 일반 대중들에게 직접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고 이에 따라 편집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표현에 대한 규제 이슈가 등장하게 된다. 또한, 과거에도 혐오 표현은 존재했지만 큰 사회적인 이슈가 되지 않은 반면, 혐오 표현이 쉽게 복제, 전파될 수 있는 인터넷의 등장에 따라 표현의 자유와의 균형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보다 쉽게 공적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시민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온라인을 통해 스스로 조직화 함으로써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피통치자의 권력 강화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 만은 아니었다. 정보통신 기기에 의한 자동화된 정보 수집(인터넷을 이용하거나 물건을 사는 과정에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개인정보로 자동적으로 기록, 수집된다), 초거대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와 분석 기술의 발전, 인터넷 패킷 감청이나 해킹 수사와 같은 감시의 확대는 기업과 정부 등 기존 권력이 보다 쉽게 소비자나 시민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프라이버시권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통신비밀의 보호, 반감시권 등으로 확대된다.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논란 역시 근본적으로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둘러싼 싸움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권의 강화는 저작권자, 사실상 거대 문화 기업의 권력을 강화한다. 반면, 과거 냅스터나 소리바다와 같은 P2P 서비스는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문화 기업의 문화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킨다.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 강화는 제약 기업의 권력은 강화시키는 반면, 시민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협한다.

정보인권을 기존의 기본권과 구분되는 새로운 기본권으로 규정할 수는 없더라도, 정보화에 따른 사회 변화와 이로 인해 새롭게 발생하는 인권 침해 문제를 조명하는데 유용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보인권의 유형, 혹은 정보인권에 포함될 수 있는 인권의 구분도 학자마다 다르며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보화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인권 개념이 형성될 수도 있고, 인권간의 관계나 중요성도 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국가인권위원회 <정보인권 보고서>는 정보프라이버시권, 온라인에서의 표현의 자유, (망중립성을 포함한) 정보접근권, 정보문화향유권으로 구분하여 다루고 있다. 이 교재에서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의 보호, 반감시와 통신비밀의 보호, 정보문화향유권, 망중립성, 인터넷거버넌스를 다룬다.

정보인권의 보호는 현실 속에서 법과 정책을 통해 구현된다. 그리고 정보통신 정책을 비롯한 공공 정책은 ‘민주적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그러한 민주성은 통상 행정, 사법, 입법부의 견제와 균형이나 공개적인 의견 수렴 과정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공개적인 의견수렴, 혹은 시민의 정치 참여는 형식적인 공청회나 의견서 제출에 제한되고 있으며, 실제로는 행정부 관료들의 재량에 달려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인터넷의 표준과 정책의 개발, 운영이 민간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으며, 세계 주소자원 관리기구인 ICANN이 정책 결정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표방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식, 즉 멀티스테이크홀더 모델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것은 여타 정보통신 정책 결정에도 많은 함의를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여러 이해관계자가 인터넷 관련 원칙, 규범, 정책 등을 합의된 절차와 동등한 참여를 통해 결정하는 것을 ‘인터넷 거버넌스’라고 한다. 유엔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디지털시대 표현의 자유와 민간기업 보고서>에서 “인터넷 거버넌스 멀티스테이크홀더 절차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정책의 중요한 추진동력이 되어 왔다. 이러한 점을 명심하고 국제기구들은 인권 감수성이 있는 기술전문가를 늘리는 등의 방법으로 정책개발이나 기타 기준수립 절차에 있어 실질적인 시민사회 참여를 보장해야만 한다”고 지적하였다(A/HRC/3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