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정보문화향유권

000-삽화-정보인권_5_RGB600dpi

1. 개요

세계인권선언 제27조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5조는 모든 사람이 문화를 향유하고 과학기술의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저작자와 발명가가 자신의 창작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도 명시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 27조
1. 모든 사람은 그 사회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즐기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작한 과학적, 문화적 또는 예술적 작품에서 생기는 정신적 및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5 조
1.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의 다음 권리를 인정한다.
(a)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b)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
(c) 자기가 저작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창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
2. 이 규약의 당사국이 그러한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달성하기 위하여 취하는 조치에는 과학과 문화의 보존, 발전 및 보급에 필요한 제반조치가 포함된다.
3. 이 규약의 당사국은 과학적 연구와 창조적 활동에 필수불가결한 자유를 존중할 것을 약속한다.
4. 이 규약의 당사국은 국제적 접촉의 장려와 발전 및 과학과 문화분야에서의 협력으로부터이익이 초래됨을 인정한다.

지적재산권은 ‘무형의 지적자산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문화예술 저작물의 창작자에게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저작권’, 산업상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발명을 일정 기간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발명자에게 부여하는 ‘특허’가 대표적인 지적재산권 제도이다. 이 외에도 상표권, 지리적 표시, 영업 비밀, 반도체 배치설계 등 새로운 분야들이 지적재산권 영역에 포함되고 있다.

그런데 지적재산권의 영역이 확장되고 배타적 권리가 강화됨에 따라, 문화와 과학기술의 혜택을 향유할 권리(정보문화향유권)를 오히려 침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전 세계적 확산은 문화가 생산, 유통, 향유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저작권 침해 가능성도 높아졌지만, 반대로 디지털 저작권의 강화로 인해 저작물에 대한 접근이나 창작이 제약되거나 프라이버시권과 같은 기본권 침해도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팬 카페에서 동영상이나 사진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 커뮤니티 활동이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위축되거나, 저작권 문제로 인터넷 방송의 비영리적 창작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 환경에 적합하도록 저작권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허가 소프트웨어나 비즈니스 모델에 부여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과 새로운 서비스 도입이 위협 받고 있다. 특허가 오히려 기술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의약품 특허는 의약품의 가격을 높여, 특히 제3세계에서 의약품 접근권을 제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 에이즈 치료제인 푸제온을 둘러싸고 의약품 접근권 문제가 이슈가 된 바 있다.

지적재산권 제도는 <저작권법>, <특허법>, <상표법> 등 특정 법률을 통해 집행된다. 그런데 문화 산업과 첨단 기술이 발전한 선진국들이 국제 조약이나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강화된 지적재산권 제도를 다른 나라에 강요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각 국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적합한 제도가 채택되는 것이 아니라, 무역 협상의 결과물로 한 사회의 문화와 기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무역협상은 통상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져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의 지적재산권 제도 역시 내부적인 필요와 논의를 통해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가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 등을 통해 형성되어 왔다.

지적재산권은 배타적 권리이며, 보편적 인권이라기 보다는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이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은 다양할 수 있는데, 지적재산권 제도는 그 한 가지 방식일 뿐이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이 건강권이나 접근권과 같은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통제되어야 한다. 나아가 디지털 네트워크의 발전과 같은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저작권과 특허 제도는 문화의 발전과 기술 혁신이라는 고유의 목적을 유지하면서도,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다양한 국제 협약과 선언들은 지적재산권과 다른 기본권, 특히 생명권과 충돌할 때 지적재산권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며 이에 대한 제한이 필요함을 천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사회권 위원회)가 발표한 <일반논평 17>과  2001년 80여 개 국가들의 합의로 채택된 <트립스 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도하 선언문> 등이 있다.

사회권 위원회의 사회권 규약에 관한 <일반논평 17 : 자신이 저자인 모든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창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혜택을 받을 모든 이의 권리>는 지적재산권과 다른 기본권의 충돌이 발생할 때 다음과 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함을 밝힌다.

유엔 사회권 위원회 일반논평 17 궁극적으로 지적재산은 사회적 산물이고 사회적 기능이 있다. 따라서 당사국은 필수의약품, 식물종자 또는 기타 식량생산 수단, 또는 교과서 및 학습 자료에 대한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은 접근 비용이 건강, 식량 및 교육에 대한 다수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지 않도록 방지할 의무가 있다. 또한, 당사국들은 어떠한 발명의 상업화가 생명권, 건강권 및 사생활보호 등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의 완전한 실현을 위태롭게 할 경우 이러한 발명을 특허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에 반하는 과학적 및 기술적 진보의 이용을 방지하여야 한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선구자인 리차드 스톨만은 ‘지적재산권’이라는 개념이 유체물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정보에 대해서 유체물과 똑같은 ‘소유권’ 의식을 갖도록 왜곡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지적재산권은 저작권, 특허, 상표권 등 보호의 대상이나 적용방식, 그리고 역사적인 맥락이 서로 다른 제도를 하나의 개념으로 일반화함으로써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떤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이라는 용어가 아니라, 저작권, 특허, 상표권 등 특정한 용어를 사용하기를 권고한다. 그의 지적처럼, 애초에 지적재산권 개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특허권, 저작권 등의 제도가 먼저 등장하고 1967년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설립되면서 지적재산권이라는 용어가 광범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