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정보인권의 개념

2. 한국에서 정보인권 개념의 발전

한국사회에서 정보인권에 대한 요구는 시민사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정부 주도의 정보화 확산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이나 참여는 보장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5년 내무부가 전자주민증 계획을 밝혔을 때 많은 시민들과 인권사회단체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1962년 주민등록법이 제정되고 1968년 주민등록증이 발급되기 시작한 이래로 별다른 사회적 문제제기 없이 시행되어 온 이 제도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반대 여론이 높아진 것은 정보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시민사회는 전자주민카드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국가감시의 가능성을 들어 이 제도를 반대하였다. 1998년 첫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야당 후보자 시절부터 전자주민카드를 반대해온 김대중 정부는 전자주민카드 시행계획을 백지화하였다.

2000년에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었다. 당시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윤리 확립을 위해 사업자와 이용자의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통신질서확립법’을 추진하였다(현행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기능을 크게 강화하고 인터넷사업자로부터 ‘불량’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을 제공받아 ‘불량이용자 DB’를 관리하겠다는 등의 계획이 담겼다. 2000년대 전후로 활발해진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 활동으로 자유로운 인터넷을 만끽하던 이용자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시민사회는 특히 ‘인터넷 등급제’의 문제점에 주목하였다. 인터넷 등급제는 영리 목적으로 청소년에게 유해한 인터넷 컨텐츠를 제공하는 경우 내용등급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떤 등급을 부여할 것인지 행정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일방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가상연좌시위를 앞두고 정보통신부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소동이 일기도 하였다(이 사건으로 진보네트워크센터는 경찰로부터 7시간 동안 압수수색을 당했으나 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입되는 인터넷 등급제에 대하여 청소년 이용자들이 크게 반발했다. 십대들이 주요 창작자로 참여하는 팬픽이 검열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인기 아이돌 팬클럽들에서 반대 여론이 높았고 당시 정보통신부 게시판은 “팬클럽이 단결하여 질서확립법 끝장내자”,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어른들의 판단에 맡겨야 합니까”라는 내용의 게시물들로 뒤덮였다. 성소수자들 또한 인터넷 등급제에 반대하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폐지를 주장하는 집회를 열었다. 인터넷 등급제의 대상이 될 ‘청소년유해매체물’의 법정 기준에 ‘동성애’를 포괄적으로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제7조 별표1). 이용자와 시민사회의 반발이 확산되자 법안은 의무적 등급제를 자율등급제로 수정하는 등 여러 차례 수정되었고 이듬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인터넷의 내용 규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커져 가는 가운데 2002년 헌법재판소는 ‘불온통신의 단속’ 조항에 대한 진보네트워크센터 등의 공익소송사건에서 “인터넷은 공중파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라고 선언하며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손을 들어 주었다(헌법재판소 2002. 6. 27. 99헌마480).

‘정보인권’이라는 개념을 대중화하고 제도화의 전기를 마련하게 된 계기는 2003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둘러싼 논쟁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 이하 NEIS)은 시·도교육청 및 교육인적자원부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든 교육행정기관 및 초·중등학교를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교육행정 전반 업무를 연계처리하는 시스템이다. NEIS 도입에 대해서 교사·학부모·학생 등 정보주체가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반대하고 나섰다. 정보주체의 동의나 법적 근거 없이 중앙정부가 전자적으로 정보를 수집 및 처리하는 것이 ‘정보인권’ 침해라는 것이었다. NEIS를 둘러싼 논란이 커져가면서 ‘정보인권’에 대한 논쟁이 사회적으로 크게 일었다.

개인정보에 대한 정보주체들의 요구가 커져가면서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 또한 제도적으로 인정되어 갔다. 2003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가 NEIS에 대하여 인권침해 결정을 내렸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일부라고 보았다.

2005년 헌법재판소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독자적인 기본권이라고 인정하였다(헌법재판소 2005. 5. 26. 99헌마513 등).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빈번해지고 개인정보의 디지털 처리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면서 2011년 비로소 <개인정보 보호법>이 제정되었다.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또한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본인확인제(실명제) 위헌 결정으로 익명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헌법재판소 2012. 8. 23. 2010헌마47·252 등), 허위의 통신에 대하여 위헌으로 결정하였으며(헌법재판소 2010. 12. 28. 2008헌바157 등), 트위터 선거운동을 인정(헌법재판소 2011. 12. 29. 2007헌마1001 등)하는 등 제도적으로 확산되었다.

‘정보문화향유권’은 지적재산권 체제에 대한 비판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저작권, 특허 등 지적재산권은 근대 이후 유럽에서 등장한 체제이고, 한국 역시 해방 이후 관련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1986년 한미투자협정의 체결과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을 통해 미국 등 선진국은 국내 지적재산권 체제의 강화를 요구하게 되었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당시부터 ‘정보의 상품화 반대와 정보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표방하였고, 90년대 말부터 지적재산권 이슈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하였다.

지적재산권 체제는 그 자체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배타적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저작권의 경우에는 공정 이용(국내 법률상 저작재산권의 제한과 예외), 특허의 경우에는  강제실시가 그것이다. 물론 보호 기간도 일정하게 제한된다. 원론적으로 지적재산권 체제는 배타적 권리와 지식의 확산 및 공공의 이익과 ‘균형’을 이루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 공공의 이익 부분은 배타적 권리에 대한 ‘제한이나 예외’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이용자 혹은 시민의 적극적인 권리, 즉 ‘정보문화향유권’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었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 및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5조에서도 창작자, 발명가의 권리뿐만 아니라 누구나 문화, 과학적 지식을 향유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가인권위원회 <정보인권 보고서>에도 반영되었다. ‘정보문화향유권’ 운동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판 운동을 넘어 적극적인 ‘정보공유’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개념이다. 2011년 통신사들이 무선인터넷전화(mVoIP) 서비스를 차단한 것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때 진보네트워크센터와 경실련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저해한 것에 대하여 SK텔레콤과 KT를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에 고발 조치하였다. 이후 정부는 <망중립성 가이드라인>과 <트래픽 관리 지침>을 만들었지만, 실제 이에 근거한 규제 권한은 행사하지 않았다.

망중립성은 인터넷접속서비스 사업자가 “인터넷으로 전송하는 트래픽을 그 내용, 유형, 송수신자, 이용기기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콘텐츠나 서비스 사업자 입장에서는 통신사가 망을 보유하고 있다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불공정 경쟁을 한 것이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기기로, 자유롭게 콘텐츠나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를 침해당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망중립성은 인터넷에 대한 접근권 및 표현의 자유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망중립성을 포함한 정보접근권을 정보인권의 한 유형으로 보았다(정보인권보고서). 정보접근권은 헌법재판소가 알 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한 이후 (헌법재판소 1991. 5. 13, 90헌마133) 1996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제도화되었다.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권리도 정보접근권으로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2001년 1월 16일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 제정). 국가인권위원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국제규범에서 보편적 인터넷 접속의 권리와 망중립성을 주요한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유엔은 인터넷으로의 보편적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이 모든 국가의 우선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A/HRC/17/27). EU 의회는 2009년 <전자 커뮤니케이션 공통규제 프레임워크 디렉티브>를 개정하여 인터넷 접속권을 표현의 자유와 동등한 기본권으로 규정하였고, 인터넷에 대한 개방성과 망중립성을 보장하도록 하였다.

인터넷은 세계적인 네트워크이고, 그 위에서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상호 작용한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의 이용자이자 소비자이다. 우리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사찰 대상이 되었을 수 있는 것처럼, 인권 침해 역시 세계적인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인권 침해 이슈와 유사한 문제들이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정보화와 관련된 제반 문제를 세계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는 모두의 고민이지만, 우리는 또한 국내 법률과 규범의 규제를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규범의 영향을 받지만(특히 지적재산권), 또 한편으로는 한국만의 고유한 역사와 맥락을 갖고 있기도 하다. 대다수의 나라들이 국민식별번호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처럼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광범하게 이용되는 나라는 없다. 인터넷 실명제나 공인인증서와 같이 고유한 규제 체제가 형성되어 오기도 했다. 한국의 정보인권 개념은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인권 운동과 연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적인 인권 침해와 제도에 맞서 투쟁하면서 형성, 발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