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망중립성

2.망중립성 논란

그렇다면 왜 갑자기 망중립성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이는 기본적으로 트래픽 폭증과 가입자 시장의 포화 때문이다. 인터넷 도입 초창기에는 망사업자와 콘텐츠/서비스 사업자가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였다. 인터넷 서비스와 콘텐츠가 많아야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할 이유가 발생하므로 인터넷 망 가입자가 늘어나게 되고, 거꾸로 인터넷 망 가입자(인터넷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서비스와 콘텐츠에 대한 접속도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국내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통신 서비스 가입자가 정체되기 시작하였다. 한 국가 내에서 초고속 인터넷이나 모바일 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는 가입자가 포화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는 계속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동영상 콘텐츠의 증가로 인터넷 트래픽은 폭증하게 되었다. 이는 인터넷 망을 운영하는 통신 사업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무선인터넷전화(Voice over IP, VoIP)와 같이 전통적인 통신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는 서비스의 등장은 통신사의 수익을 위협하였다. 또한, 트래픽을 분석, 통제할 수 있는 대역제어기술의 발전은 통신사가 트래픽을 통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가입자 포화, 트래픽 폭증, 경쟁 서비스의 출현 등의 상황 변화에 대응하여 통신사들은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망을 통해 흐르는 트래픽을 통제하기 시작했는데, 이로부터 망중립성 논란이 발생하게 되었다.

통신 가입자 포화에 따라 통신사들은 인터넷 서비스와 콘텐츠 영역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경쟁사의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는 품질을 낮추거나, 자신 혹은 계열사의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은 우선적으로 전송해주려는 동기가 발생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무선 인터넷전화(mVoIP) 서비스이다. 해외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통신사들이 mVoIP 서비스를 차단해 온 바 있다. 스카이프, 보이스톡과 같은 mVoIP 서비스들은 통신사들의 전통적인 수익원인 전화 서비스 수익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들은 인터넷 서비스나 콘텐츠 제공자에게 추가 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즉, 자신에게 추가 비용을 납부한 사업자의 서비스나 콘텐츠에 대해서는 다른 서비스나 콘텐츠에 비해 우선적으로 전송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통신사는 콘텐츠/애플리케이션 사업자들이 통신사가 구축한 망에 무임승차하고 있으며, 트래픽의 급증에 따른 망 투자비의 보전을 위해서는 콘텐츠/애플리케이션 사업자들의 비용 분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다. 이용자와 마찬가지로, 콘텐츠/애플리케이션 사업자들도 이미 인터넷 접속에 필요한 전용회선비를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빠른 전송을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이는 충분한 재정적 여력을 가지고 있는 거대 기업에 유리할 뿐이며, 혁신적인 소기업이나 비영리 콘텐츠의 발전을 억제하게 될 우려가 있다.

2-1. 망중립성 침해의 문제점

통신사들이 특정한 트래픽을 차단하거나 차별하는 행위, 즉 망중립성 위반 행위는 공정 경쟁의 문제를 야기한다. 즉, 망을 보유하고 있다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자신의 경쟁 사업자를 차별,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한 토론회에서 통신사들은 ‘mVoIP 차단은 기술적인 트래픽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음성통화 수입의 감소에 따라 망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경쟁 업체의 애플리케이션을 차단하는 ‘반 경쟁행위’를 하고 있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비단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특정한 유형의 트래픽을 차단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서비스와 콘텐츠의 자유로운 발전이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통신사가 자신에게 추가 비용을 납부한 특정 동영상 플랫폼을 우선적으로 전송해준다면, 동영상 플랫폼의 서비스 질이 아니라 재정 여력에 따라 불공정한 경쟁이 발생하게 된다. 혹은 통신사가 특정 유형의 트래픽(예를 들어, P2P 트래픽)을 차단한다면, 해당 서비스나 애플리케이션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통신사에 의해 차단될 우려가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누가 개발하려고 하겠는가. 망중립성 옹호자들은 트래픽 차별이 허용된다면, 인터넷은 빠른 길과 느린 길로 이원화될 것이고, 이는 인터넷의 자유와 혁신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망중립성 침해의 문제점 일러스트
망중립성 침해의 문제점
(출처 : Parivarthan,http://iksa.in/gs3/what-is-net-neutrality-and-why-should-i-care/2305/)

이용자의 인권 관점에서도 망중립성은 중요하다. 영리적 목적이든, 비영리적 목적이든, 인터넷에 연결된 이용자는 자신이 개발한 서비스나 콘텐츠를 다른 이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자신이 원하는 기기를 통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통신사가 자의적으로 트래픽을 통제하는 것은 이용자의 정보접근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혹은 정부의 압력으로 또는 정부에 협조하여 정치적 목적의 검열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망중립성은 이용자의 프라이버시와도 연결된다. 통신사들이 트래픽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우선 트래픽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용자들이 mVoIP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지, P2P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야 선별적인 차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망중립성 논란이 일고 있는 배경에는 이와 같이 트래픽을 분석할 수 있는 기술, 즉 심층패킷분석(DPI) 기술의 발전이 존재한다. 그러나 통신사들이 트래픽을 들여다보고 그 내용을 분석하는 것은 이용자 통신 비밀 침해 문제를 야기한다. 네덜란드에서 망중립성 법안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통신사들이 트래픽 분석을 통해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궁극적으로 망중립성은 우리가 미래에 어떤 인터넷을 원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통신사와 같은 망소유자가 통제하는, 중앙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제된 인터넷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개방되고 자유로운 인터넷을 만들 것인가. 망중립성은 중앙의 권력이 아니라, 말단의 이용자에게 인터넷에 대한 통제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2-2. 제로 레이팅(zero-rating)

미국 및 유럽 등에서 트래픽에 대한 차단, 차별을 금지하는 망중립성 규제가 도입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망중립성과 관련된 국제적인 핫 이슈 중 하나는 ‘제로 레이팅(zero-rating)’의 문제이다. 제로 레이팅이란 통신사가 특정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 이용을 위한 데이터를 무료로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이 자사 가입자들에게 11번가 쇼핑몰을 이용할 때 드는 데이터를 가입자의 데이터 한도액에서 차감하지 않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제로 레이팅은 특정한 트래픽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거나 차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망중립성 옹호론자들은 특정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에 기반하여, 통신사가 이용자의 접근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망중립성 위반으로 보고 있다. 특히, 통신사가 자사 혹은 계열사의 콘텐츠나 애플이케이션만을 무료로 해주거나, 혹은 콘텐츠 사업자에게 돈을 받고 그 콘텐츠 이용에 필요한 데이터를 무료로 해주는 경우, 공정 경쟁을 위협하고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래픽의 차단, 차별과 유사한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제로 레이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는 기업의 가격 차별화의 하나의 형태일 뿐이며, 한정된 주파수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장의 작동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페이스북의 ‘프리 베이직(Free Basic)’ 서비스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통신사가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가입자에게 페이스북 등 일부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인데, 페이스북은 이를 개발도상국의 인터넷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망중립성 옹호론자들은 프리 베이직 서비스에 포함되지 않는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은 차단된다는 점에서 이 역시 망중립성 위반이며, 신규 이용자들을 페이스북과 같은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가둬놓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용자의 인터넷 접근권 확대는 전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른 공공 정책을 통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로 레이팅은 그 형태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공공적 지식의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위키피디어의 경우에도 통신사와 계약을 맺고 ‘위키피디어 제로’라는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통신사에게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포함한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제로 레이팅 구현 형태의 다양성, 각 국의 통신 시장 환경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현재 상황에서는 보다 실증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망중립성 규제로 해결해야 할 지, 공정경쟁 규제로 해결해야 할 지도 관건이다. 다만, 제로 레이팅이 망에 대한 소유권에 기반하여 통신사가 공정 경쟁을 위협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될 것이다.